"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라 | Go, take the scroll, and eat it." 2020년 주제 말씀: 요한계시록 Revelation 10:8-9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요한 계시록 Revelation 22:18-21

오늘은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부분 곧 성경 전체의 마지막 부분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어떤 말씀으로 끝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의 시작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내용으로 시작되지만 성경의 끝은 주님의 엄중한 경고의 말씀과 복된 약속, 그리고 교회의 기도와 교회를 향한 축도로 끝이 납니다.

먼저, 주님은 교회를 위하여 경고의 말씀을 주십니다. 16절에,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교회들을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보내어 말씀을 주셨습니다. 주의 말씀은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것입니다.

요 17:9절에서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곧 주님은 세상이 아니라 아버지의 것인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이 교회에게 주신 경고의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본문 18-1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셨습니다. 이 경고의 말씀은 단순히 말씀을 기록한 서기관이나 말씀을 전하는 자들만이 아니라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자들에게 주신 경고입니다.

주님이 주신 이 말씀에 어떤 것을 더하거나 제하지 말하는 경고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이 말씀에 무엇을 더하면 재앙이 그에게 더해질 것이며, 만일 누구든지 이 말씀에서 무엇을 제하여 버리면, 거룩한 성에 참여됨에서 제하여 버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18-19절 말씀은 구약 성경 신명기 4:2절 말씀과 연관된 말씀입니다. 신 4:2절에,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 주님이 예언의 말씀에 더하지도 말고 제하지도 말라고 하십니까? 왜 주의 말씀을 가감하지 말고 전하고 지키라고 하십니까?

주의 말씀은 더할 것이나 제할 것이 없는 온전한 말씀, 영원한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주의 말씀의 충분성과 권위를 믿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경고의 말씀은 성경의 종결성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예언의 계시에 더하지 말고 제하지 말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가 요한계시록으로 끝이 났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교회에게 요한계시록후서를 주시기 않았습니다.

주님은 교회에게 기록된 성경 곧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을 주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믿고 고백하는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2-3번에 나온대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그를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가르쳐주는 유일한 법이라고 했고,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무엇을 믿어야 할 것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는 의무에 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기록된 말씀은 우리의 구원과 삶에 관한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고, 우리가 알고 믿어야 할 삼위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성품과 그가 이루신 구원이 명료하고 충분하고 정확하게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말씀을 듣는 성도들도 주의 말씀을 가감해서 들으면 안됩니다. 내게 좋은 말씀만 받고, 내가 원하지 않는 말씀을 거부해서는 안됩니다. 선포되는 주의 말씀을 가감하지 말고 믿음으로 받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마음과 삶이 주의 말씀의 지배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주의 말씀을 가감하지 말라는 말씀은 우리 마음대로 말씀을 바꾸거나 사사로이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왜곡시키면 안됩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사단이 진리의 말씀을 왜곡한 것에 속은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신구약 66권에 7권의 외경을 덧붙여 성경을 73권으로 주장합니다. 그래서 마리아의 승천설과 교황의 무오설과 천국과 지옥의 중간인 연옥설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몰몬교에서는 “몰몬경”을 만들었고, 통일교에서는 “원리강론”을 만들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고, 신사도 모임에서는 주관적인 거짓 예언들을 기록된 말씀과 동등한 권위를 부여했습니다.

기록된 성경 66권만이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 전체가 무엇을 증거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고, 그가 이루신 구원을 증거합니다. 요 5:39절에서, 예수님은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성령은 무엇을 증거합니까? 요 15:26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성령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그가 이루신 구원을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예언의 말씀에 더하거나 빼거나 하지 말라는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을 전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갈 1:8절에서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예언의 말씀에 더하거나 제하지 말라는 말씀은 오직 복음 안에 굳게 서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사욕과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곧 주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이 주의 말씀이 꿀같이 달고 맛있게 느껴지기를 기도합니다. 주의 말씀이 우리 영혼에 달아야 말씀에 감격이 있고, 삶에 감사와 변화가 나타나고, 성숙함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주의 말씀이 달지 않으면 예배가 지루하고, 감격이 사라집니다.

오늘 우리 성도님들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있고,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 중의 하나는 주의 말씀이 우리 영혼에 달고 맛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의 말씀을 열 수 있고, 읽을 수 있고, 예배의 자리로 나아와 주이 말씀을 갖다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7절을 보세요. 함께 읽겠습니다. 주의 말씀을 강조하는 이유는 주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주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마음 속에 주의 말씀을 새기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기록된 주의 말씀을 읽고 듣고 순종하는 자입니다. 주의 말씀을 먹는 자입니다. 먹어야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지키는 자가 누리는 그 복이 어떤 복입니까? 우리 성도들이 그 복을 누리면 참 좋겠습니다.

그 복을 8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 요한이 무엇을 보고 들었습니까?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았고 주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요한은 천국의 교회의 모습을 보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구원을 들었습니다. 요한은 천국에 먼저 간 성도들이 어떻게 하나님과 어린양을 경배하는지를 여러 차례 보았습니다.

8절에서 주의 영광을 보고 주의 생명의 말씀을 들은 사도 요한 마음 속에 무엇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까? 경배하고 싶은 마음, 예배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주의 말씀을 사랑하고 주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누리는 복은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주께 복받은 마음입니다.

주의 말씀을 통해서 주를 경배하고 싶은 마음을 소유한 성도가 복덩이들입니다. 이것이 복된 성도의 모습입니다. 사도 요한 당시에 핍박과 고통 중에 있는 성도들은 주를 예배함으로 위로와 소망과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실천 사항으로 10/1/1을 하는 이유도 주를 신실하게 예배하기 위함입니다.

두번째는 주님의 복된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성경에 가장 마지막으로 나오는 약속입니다. 20절을 보십시요.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주님의 재림은 인격적이고 (“내가”), 확실하고 (“진실로”), 임박한 것입니다 (“속히 오리라”).

계시록 22장에서 주님이 오신다는 말씀을 3번씩이나 반복해서 하셨습니다. 7절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라고 했고, 12절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교회에게 주시는 메세지가 무엇입니까? 내가 진실로 다시 오리니 너희는 나를 기다려라, 나를 만날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속히 오겠다는 말씀은 주님이 피흘려 구원하신 신부 곧 교회에게 빨리 오고 싶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빨리 오지 않으십니까? 주님이 이 말씀을 하신지가 벌써 거의 2000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아직도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속히 오리라”는 말씀에서 “속히”가 무슨 의미입니까? 이 “속히”라는 말은 인간의 기준에서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적 시간 속에서의 속히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적 시간표에 보면,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사건은 재림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계획된 모든 것이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고난받으심, 순종하심, 죽으심, 부활하심, 승천하심,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심이 모두 일어났고, 마지막 사건인 재림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10절에 보면,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고 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고, 숨기지 말고, 공개하라는, 전파하라는 말씀입니다. 왜요? 구속사에 남은 것은 재림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처음 기록할 때인 1세기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나 모두 하나님의 구속사의 시간표에서는 같은 시간대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주님이 더디 오시는 것 같지만 주님의 재림은 임박한 사건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직 구원받아야 할 자들이 남아있기 때문에, 그 수가 차면 주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왜 성도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살아야 합니까? 그 날이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 날에 우리가 주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기 때문에, 그 날에 우리는 영광스러운 몸을 입고, 죄를 지을 수 없는 영화로운 몸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번째는 교회의 기도입니다. 20절 마지막에,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님의 복된 약속에 말씀에 교회는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마치 신부가 사랑하는 신랑에게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 기도는 교회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이 기도가 성도들의 인사였다고 합니다. 이 말씀이 아람어로 “마라나타”입니다. 우리도 양 옆에 분들에게 해보겠습니다. 다같이 “마라나타.”

혹시 이 말씀 앞에서 마음이 불편하신 분이 계십니까? 세상에 얼마나 할 일이 많은데, 자식들도 키워야 하고, 아이들 공부도 시켜야 하고, 졸업 후에 직장을 잡고, 결혼도 시켜야 하는데, 어떻게 한가하게 주님의 재림에 대한 생각을 하며 살 수 있어 라고 생각하는 분이 없으시길 바랍니다.

성도의 믿음은 주님의 재림과 너무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으면 우리는 모든 일들을 미루게 됩니다. 오늘 드릴 예배를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 붙들고 살아야 할 말씀을 미루게 되어 나태함에 안주하게 되어 거룩한 삶을 살 수 없게 됩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면 바로 그 순간 모든 것을 놓고 가야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은 종말적인 삶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그대로 놓고 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21절을 봅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이것은 사도 요한의 축도입니다. 이 축도에서 “모든 자들”은 “모든 성도들 곧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합니다. 그 당시 사도 요한은 그의 교회 성도들로부터 분리된 상태에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주의 말씀을 증거하다가 로마 정부로부터 밧모섬에 유배를 당해 고통 중에 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고통 중에 있는 사도 요한은 주의 교회를 향하여 축복 기도를 합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성도들에게 있을지어다.” 무엇이 증거됩니까? 주를 믿는 성도에게 무엇이 있을 것을 증거합니까? “주 예수의 은혜”입니다. 주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성도들에게는 주 예수의 은혜가 함께 함이 증거됩니다.

성도의 삶은 주의 은혜로 시작하여 주의 은혜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성도가 이 땅에 살면서 만나는 모든 일들, 때로는 우리가 원치 않는 일들을 만나 힘들 때가 있으나 그 모든 일에 주의 은혜가 함께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바울의 삶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삶에 임한 주의 은혜를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둠에 거하며 헤메이던 바울에게 주의 은혜의 빛이 비추어졌습니다. 주님은 은혜로 죄인 바울을 구원하셨고, 부족한 바울에게 사명을 주셨고, 주의 은혜로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바울로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바울이 육신적으로 연약할 때에 주님은 족한 은혜로 함께 하셨고,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고난 중에도 주의 은혜가 함께 하여 그는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주 예수의 은혜” – 주님 안에 거하는 성도들, 주님이 이루신 구원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멈춤이 없는 주의 은혜가 함께 합니다. 이 말씀은 사도 요한 당시 교회 성도들에게 큰 위로와 기쁨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바울의 삶은 우리의 삶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온전한 말씀을 주셨고, 그 말씀가운데 주의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소유한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의 약속을 굳게 믿고, 그의 오심을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주를 믿음으로 기다리며 사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주 예수의 은혜로 함께 하심으로 모든 일에 견디게 하시며, 이기게 하시며, 굳게 세워가시는 은혜를 누리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