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마태복음 9:1-8)
우리 삶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정말 이것만 있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는가?
마태복음 9:1-8에 보면,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데리고 나왔다. 이 중풍병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중풍병에서 고침 받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이 중풍병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예수님이 계신 집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이 사람들은 (네 친구들은) 남의 집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구멍을 뚫고 침상을 달아 내렸다.
교회에 오래 다니신 분들은 오늘 본문이 익숙한 내용일 것이다. 보통 이 본문을 통해서 강조하는 내용은 세가지 정도이다. 첫번째는 사람들이 이 중풍병자를 불쌍히 여겨 그를 주님께 데려왔듯이, 우리도 고통 중에 있는 자들을 주님께 데려와야 한다.
두번째는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친구들이 큰 장애물을 만났지만 그 장애물을 믿음으로 극복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믿음으로 모든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세번째는 믿는 자들은 함께 협력해야 한다. 친구들은 함께 중풍병자를 데리고 왔고, 함께 지붕을 뜯고, 병자의 침상을 달아 내렸으니, 이처럼 교회도 함께 협력할 때에 큰 일을 행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세가지 내용들이 틀린 말이 아니라 좋은 포인트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세가지 내용들은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세지는 아니다. 그럼 무엇이 마태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세지인가?
그것을 우리는 주님이 그 중풍병자에게 하신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마태복음 9:2절에 보면,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침상에 누워있는 중풍병자와 그와 함께 한 친구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네가 병고침을 받았느니라” 가 아니었겠는가?
네 친구들이 중풍병자를 데리고 예수님 앞으로 온 목적은 단 한가지 곧 병고침을 받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믿음도 믿음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주님이 말씀하셨다.
주님은 왜 병고침이 아니라 죄사함에 대해서 먼저 말씀하셨는가? 주님은 이 중풍병자에게 가장 큰 필요가 병고침이 아니라 죄사함임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이 사람이 안심할 수 있는 이유는 죄사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병고침 받는 것이 아니라, 죄사함을 받는 것이다. 주님이 하시는 일은 죄의 통치 아래서 고통받는 자를 해방시키시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 표적은 주님이 누구시며, 그가 이루시는 구원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에 그곳에 함께 있었던 어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속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을 모독했다고 생각했다. 주님은 그들의 악한 생각을 아시고,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고 책망하셨다 (마 9:4). 정말로 하나님 아버지를 모독한 자는 서기관 자신들이다. 그들은 성령을 훼방한 자들이다.
주님은 그 자리에 모인 무리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알려 주시기 위해 중풍병자를 고치신 것이다. 그래서, 마태복음 9:6절 상반절에 보면,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중풍병자는 영원히 심판 받을 죄인이었다. 우리들도 침상에 누워있던 중풍병자와 같은 입장에 있던 자들이었다. 우리 역시 죄로 인하여 영적으로 모든 것이 마비된 자들이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주님께 나올 수 없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그의 주권적인 은혜로 불러 주셨다. 성령께서 나면서부터 죄인이고, 평생 죄인으로 살던 우리에게 주님의 온전한 대속을 믿게 하심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셨다.
이 죄사함의 기쁨은 온 천하를 얻은 것보다 더한 기쁨이다. 받은 자만 알 수 있는 기쁨이다. 이제 우리는 인생의 가장 큰 문제, 결코 우리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 받은 복된 자들이다.
온전한 죄사함 받았어도 여전히 삶의 고통과 아픔과 질병으로 인하여 힘든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 모든 어려움 가운데 주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가 있기에 인내할 수 있다.
시편 32:1절에서, 다윗은 “허물의 사함을 받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고백했다. 그렇다. 죄사함 받은 자가 진정한 행복자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복을 따라가지 말고, 주의 복덩이로, 복이 있는 자답게 죄사함의 기쁨을 누리며 전하며 사시기를 기도합니다.